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새러토가 전투 (문단 편집) === 전간기 === 프리먼 농장 전투 후, 대륙군 내부에서는 호레이쇼 게이츠와 베네딕트 아놀드의 불화가 폭발했다. 이는 게이츠가 프리먼 농장 전투에 관한 보고서를 대륙 의회에 제출할 때 아놀드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 아놀드가 이에 대해 항의하자, 게이츠는 그가 자신의 명령을 위반했으니 처벌받아 마땅하다며 그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벤자민 링컨 준장에게 아놀드가 맡았던 부대의 지휘권을 넘겨줬다. 이러한 대우에 분노한 아놀드는 [[조지 워싱턴]] 사령부로 이직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하고 막사에 감금당했다. 한편 버고인의 부관들은 프리먼 농장 전투 다음날인 9월 20일에 다시 적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만약 버고인이 이 주장에 따랐다면 아놀드를 부당하게 대우한 게이츠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대륙군이 패배했을 수도 있었지만, 버고인은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고 오랜 행군으로 지쳤다고 판단하고 이를 거부하고 숙영지에 남아 있기로 했다. 얼마 후, 버고인은 대륙군이 조지 호숫가에 있던 아군의 보급 요새를 공략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그는 모든 공세를 중단하고 챔플레인 호숫가에 위치한 티콘데로가 요새로 퇴각하는 걸 고려했다. 그러나 헨리 클린턴 소장으로부터 "아군이 곧 뉴욕에서 출발해 허드슨 강을 거슬러 올라갈 것이며 10일 안에 몽고메리 요새를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편지를 접수한 버고인은 해밀턴과 합세할 때까지 새러토가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버고인은 9월 23일 클린턴에게 편지를 보내 서둘러 자신과 합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클린턴은 10월 3일 3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뉴욕에서 출발해 10월 6일 몽고메리 요새를 공략했다. 클린턴은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세 명의 전령을 버고인에게 파견했지만, 버고인은 이 전령들이 모두 대륙군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클린턴의 승리 소식을 전해듣지 못했다. 클린턴은 대륙군이 허드슨 강에 설치한 쇠사슬을 풀고 10월 16일 리빙스턴 일대까지 이르렀지만, 이즈라엘 퍼트넘 소장이 이끄는 민병대의 역습을 받고 후퇴했다. 그 후 클린턴은 10월 17일 윌리엄 하우 장군으로부터 필라델피아로 와서 자신을 도우라는 지령을 받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리하여 버고인은 아군의 구원을 받을 기회를 영영 상실하고 적지에 완전히 고립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